2013년 4월 5일 금요일

타고난 힘 덕분에 가능했던 김성한의 타격

김성한(한화 수석코치)은 지금 생각해도 껄끄러운 타자였다. 내가 롯데, 삼성, 태평양 감독으로 있을 때도 해태전을 앞두고는 투수들을 따로 불러 김성한을 조심하라고 했다. 김성한의 독특한 타격폼 특성 상 바깥쪽 낮은 공에 약할 수밖에 없었고, 투수들에게 그 쪽으로 던지라고 늘 얘기했다. 하지만 당시 투수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몸쪽 빠른 공을 찔러 넣을 투수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만큼 제구가 되지 않았다. 또 아무리 잘 던져도 실투가 나오는데 그 것을 절대 놓치지 않았다.

 

역대 타자 중 김성한의 타격자세는 가장 독특하다고 할 수 있다.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마치 일본도를 잡는 자세와 같이 배트를 들고 뒤로 살짝 젖힌 뒤 공이 날아오기를 기다렸다가 힘껏 휘두른다. '오리 궁둥이'라는 별명도 그래서 생겼다. 어찌 보면 '어떻게 저런 자세로 칠 수 있을까'란 생각도 들 정도로 요상하다. 하지만 방망이가 45도 정도 눕혀져있다 그 궤적 그대로 나온다. 배트가 다른 타자보다 빨리 나올 수 있고, 정확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힘을 싣기 어려운 자세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공을 때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 차례 홈런왕(1985, 1988, 1999년)에 오를 정도로 장타를 양산했다. 팔만 갖고 치면 공을 멀리 보낼 수 없는데, 바로 타고난 힘 덕분에 가능했다. 김성한의 엉덩이와 종아리, 허벅지를 보면 그의 힘을 알 수 있다. 허벅지가 어마어마하게 굵었다. 타자는 허리부터 무릎까지 하체를 잘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 김성한의 경우 중심이동이 매끄럽게 이뤄지며 힘을 제대로 실었다. 방망이를 눕힌 상태에서 빠른 시간에 정확한 궤적으로 배트로 휘둘러 공을 때리고, 하체 힘을 실어 타구를 멀리 날려보낸 것이다.

 

타고난 감각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김성한은 해태에서 1982, 1983, 1985, 1986년 투수로도 뛰었다. 1982년에는 10승(방어율 2.88)도 거뒀다. 유일한 10승, 10홈런, 타점왕을 동시에 거머쥔 선수다. 투수는 공을 마음 먹은 곳에 계속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감각과 근육의 조화를 갖춰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타자뿐 아니라 투수로도 재능을 보였다는 것은 좋은 운동신경을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그 감각으로 스스로 자신에 맞는 타격폼을 찾아냈다. 빠른 공에 배트가 늦고, 힘은 워낙 좋으니까 생각해낸 자세인 것 같다. 김성한의 타격폼은 쉽게 흉내낼 수도 없다. 엉덩이를 쭉 내민 상태에서 허리를 돌리며 스윗 스팟에 힘을 제대로 전달했다는 자체도 놀랍다.

무엇보다 김성한은 '특급선수'였다. 결정적일 때 때려내는 선수가 특급선수이고, 김성한이 그랬다. 1985년 내가 삼성 타격코치로 있을 때였다. 김성한이 이만수(SK 감독.당시 삼성)와 홈런 1위를 다퉜는데, 둘이 동률인 가운데 마지막 경기에서 맞붙었다. 김성한에게 홈런만 맞지 않아도 이만수는 홈런 공동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당시 삼성 투수였던 황규봉에게도 공을 빼라는 지시가 나갔다. 하지만 바깥쪽 조금 덜 빠진 실투를 놓치지 않고 김성한이 밀어서 홈런을 터뜨렸다. 이만수는 포수였는데 눈앞에서 그렇게 경쟁자 김성한에게 홈런왕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기술도 정신력도 겸비한 악바리 박정태

박정태(44.WBC대표팀 타격코치)는 '흔들타법'이라는 다소 독특한 폼을 가진 타자였다.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며 방망이에 왼손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타격폼으로 눈길을 끌었다. 힘을 빼고 치기 위해 왼손을 뗀 스탠스(타격준비 자세)를 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정태를 처음 본 게 1991년 롯데에 처음 입단했을 때였는데, 프로 데뷔 초창기 박정태의 폼은 그렇지 않았다. 여느 타자와 다를 게 없는 정상적 스탠스였다. 하지만 그 때도 충분히 자질있는 선수였다. 내가 태평양 돌핀스 감독이었을 때였는데 롯데 신인이라고 해서 눈여겨봤다. 지켜보니 작은 아이가 방망이도 잘 치고, 2루 수비도 곧잘 했다. 처음 보고 '롯데에 물건이 들어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롯데 박정태의 1991년 프로 데뷔 초기 스탠스. 여느 타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내 기억으로는 박정태가 정상적인 스탠스를 버린 게 다리를 크게 다친 뒤로 기억한다. 부상 회복 후 재기를 할 때 '흔들타법'으로 타석에 섰던 것 같다. 사실 흔들타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스탠스다. 엉거주춤하며 흔들거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허리도 지나치게 많이 굽혔다. 한일 슈퍼게임 당시엔 박정태의 스탠스를 보며 일본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박정태가 잘 치자 그 웃음도 사라졌다. 혹자는 그런 타법으로 어떻게 한 시즌 최다 2루타(1992년 43개)를 쳤고, 2루수 부문 최다인 골든글러브를 5회나 수상했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박정태의 독특한 스탠스는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스탠스는 타자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잘 치는 타자들의 스트라이드(실제 타격에 들어갔을 때 자세)는 거의 비슷하다. 사진 자료를 봐도 그렇다. 특이한 스탠스를 취했던 박정태도 스트라이드에 들어가면 기본기에 충실했다. 양 팔이 히팅포인트에서 일직선으로 쭉 펴지고, 폴로스루가 잘 이뤄졌다. 하체의 중심이동도 잘 됐다. 결국 총을 쏘기 전 자세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방아쇠를 당길 때의 자세가 훌륭하면 과녁 가운데를 관통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9년 활약 시절 박정태의 스탠스. 흔들타법이라 불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을 치기 위해 마운드 쪽을 노려보고 있다.

무엇보다 박정태는 기술뿐 아니라 정신력에 있어서도 레전드급이다. 타격 달인이 되려면 기술뿐 아니라 정신력도 중요하다. 박정태는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타자였다. 공을 잘 치는데다 꼭 이기겠다는 투지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상대팀 감독인 나에게도 보였다. 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는데 헬멧을 쓴 채로 벽에 머리를 박으며 분을 참지 못하더라. 그런 모습들은 팀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선수가 있으면 편할 수밖에 없다. 1992년 롯데가 정규시즌 3위로 올라가 삼성을 꺾고 우승을 한 것도 정신적인 게 크다.

내가 처음 박정태를 봤을 때만 해도 그 정도로 '악바리'인줄 몰랐다. 쭉 지켜보니 오로지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선수였던 것 같다. '야생야사(野生野死)'라고들 하는데 그 말에 딱 맞는 선수다. 아직까지도 박정태 정도의 투지를 갖고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

히팅포인트가 가장 이상적인 김용철


김용철은 반사신경이 특히 뛰어난 타자다. 투수의 공을 최대한 붙여서 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김용철(전 경찰청 야구단 감독.56)을 처음 만난 건 1981년 11월로 기억한다. 프로야구 출범을 준비하던 때 롯데 초대 사령탑으로 예정된 나는 연봉협상까지 도맡아 했는데 첫 연봉협상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계약금 2200만원 연봉 1000만원 등 당시로선 특급대우에 계약했다. 특급대우를 해준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용철은 1976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한일은행 감독이었던 김응룡(현재 한화 감독)은 갓 입단한 신인을 4번 타자로 기용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보니 김응룡 감독의 신인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주전 3루수이자 4번 타자였던 강병철은 김용철에게 자리를 내주고 1루수와 5번 타순으로 옮기게 된다. 그 당시 김용철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 지 알 수있는 대목이다.

김용철은 타격 소질이 뛰어난 타자였다. 특히 반사신경이 뛰어나서 이상적 히팅 포인트에 맞히는 재능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투수의 던진 공에 반응하는 속도가 0.12초 이내면 국가대표팀 타자가 될 자격이 있다. 구속 145km의 공을 미리 예측해서 치면 때려내기가 힘들다. 마운드에서 날아오는 공을 홈플레이트 7m이내(잔디 경계선)까지 지켜보고 친다면 특급타자로 분류된다. 일반 타자들은 10m정도에서 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김용철은 공을 최대한 지켜본 뒤 스윙을 했다. 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치니 타자에게 유리할 수 밖에. 몸에 붙여서 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히팅 포인트가 좋다는 것은 타자의 반사신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사신경이 뛰어날수록 좋은 히팅포인트를 가지게 된다. 타자가 스트라이드한 앞 발 엄지 발가락 근처가 히팅 포인트가 된다. 바로 그곳이 임팩트 존이다. 타격의 3대 요소인 정확하고 강하게 멀리 치는 게 가능한 지점인 것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타자들은 히팅포인트에 대해 잘 몰랐다. 대충 강하게 휘두르는 타자들이 많았다. 김용철은 타격이론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투수의 공을 기다리는 자세가 좋았다. 바로 좋은 히팅포인트를 가졌다는 것이다.


김용철은 완벽한 체중이동을 통해 히팅포인트에서 힘을 모아 배팅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레벨 스윙이다. 히팅 포인트에서 타자는 어깨 손목 배트가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팔은 자연스럽게 일직선으로 뻗어줘야 한다. 김용철의 타격사진을 살펴보면 왼 무릎이 자연스럽게 굽혀진 채 팔을 쭉 뻗어주는 걸 볼 수 있다. 또 완벽한 체중이동을 통해 임팩트시 힘을 모아 치는 모습도 보인다. 김용철이 장타를 많이 생산해낸 원동력이다.

김용철은 뛰어난 타격 재능에 비해 이만수 김성한 등에 비해 화려한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재능에 비해 노력이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선수가 롱런하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토대로한 합리적 연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데 김용철은 그 점에서 아쉽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들은 자신들에 대한 관리가 형편 없었다. 자신의 몸이 자산이라는 프로의식도 부족했다. 구단과의 잦은 마찰과 갈등도 선수생활을 단축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쓸 데 없지만 '김용철이 지금 프로에서 활약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아마도 김태균 이대호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내지 않았을까 한다. 그만큼 김용철의 재능이 아깝다는 이야기이다.

이대호도 칭찬한 LG 내야수 최영진 타격자세

2루수 홈런왕 김성래, 멀리치기의 대가


삼성 김성래 타격코치가 선수시절 타석에서 타격하고 있다. 타격 후에도 양 팔이 쭉 뻗어 있는 모습이다. 장타를 만드는데 이상적인 폼이다.

김성래(52.삼성코치)는 선수시절 부드러웠다. 이만수 장효조보다 부드럽게 쳤다. 그리고 날카로움도 있었다. 부드러움에 날카로움이 있으면 타구에 강한 힘을 줄 수 있다. 그러면 타구는 멀리 날아간다. 대개 타자들은 연습타격을 할때는 전력으로 치다가도 실전에서는 전력을 다하지 못한다. 하지만 부드러운 타자는 다르다. 실전에서 80% 이상 자기 힘을 줄 수 있다.

1984년 김성래가 삼성에 신인으로 입단했다. 그때 타격하는 걸 처음 봤는데 타구의 질이 좋았다. 땅볼이 적고 펜스앞까지 날아가는 장거리 타구가 많았다. 깜짝 놀랐다. 부드럽게 스윙하는데 타구가 멀리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심히 지켜봤다.

비결은 바로 팔에 있었다. 타격 순간 양팔이 쭉 뻗었다. 우타석에서 아웃코스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도 파울이 아닌 우중간으로 보냈다. 가운데로 들어오는 공은 잘 뻗어진 팔에 걸리며 펜스를 넘어갔다. 김성래의 전신근력은 이만수의 60% 밖에 안됐지만, 부드러운 타격 폼 위에 쭉 뻗은 팔이 얹히며 타구를 멀리 보냈다.

30년 이상 지도자 생활하면서 김성래가 팔을 사용하는 걸 보고 장효조 이후 두 번째로 놀랐다. 물건이 되겠다 싶어 집중 조련했다. 타고난 재질에 노력까지 더해지면서 김성래는 1987년 2루수 최초로 홈런왕에 등극했다. 1993년에도 홈런왕에 오르며 장타력을 뽐냈다.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1986년 부터 3년 연속 차지했다.

실전타격의 기본요소는 크게 3가지다. 첫째는 정확하게 치는 것, 둘째는 강하게 치는 것, 셋째는 멀리치는 것이다. 장효조는 정확성, 이만수는 강하게 치는데 일가견이 있었다면 타구를 멀리 보내는데는 김성래가 가장 뛰어났다. 김성래처럼 타구를 멀리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쳐야 할까. 미리 설명한대로 임팩트 순간 양 팔이 완전히 뻗어 있어야 한다. 이만수는 양 팔이 뻗기전에 타격을 하곤 했는데 그러면 땅볼이 나왔다. 요즘 선수중에는 박병호(넥센)와 정의윤(LG)이 김성래처럼 팔을 잘 뻗는 타격을 한다.


삼성 김성래 타격코치가 선수시절 타석에서 타격하고 있다. 타격 직전 앞다리에 온 체중이 넘어온 상태에서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장타를 생산하기 위해서 뒷다리에 체중이 남아 있으면 안된다.

팔 뻗기에 이어 멀리치기 위한 두 번째 방법은 체중이동이다. 뒷다리에 실린 체중을 타격순간 100% 앞다리로 옮겨야 한다. 타격은 투구 동작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투수를 봐라. 공은 놓는 순간 온 체중이 앞다리로 넘어와 있다. 뒷다리에 체중이 남아 있으면 공을 멀리 던지지 못한다. 타격도 마찬가지다. 임팩트 직전에 앞다리에 체중이 모두 실려 있어야 한다. 이는 스탠스와도 관계가 있다. 다리를 넓게 벌리면 온전히 앞다리로 체중을 넘기지 못한다. 반대로 좁게 벌리면 몸통회전 후 방망이에 힘을 실지 못한다. 좁은 스탠스는 힘이 떨어진 노장의 경우 사용하기에 적절하다. 빠른 공에 대처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점은 우타자의 경우 타격시 오른손목의 위치다. 몸통이 회전하며 팔꿈치가 몸에 붙어 있는 상태에서 손목이 다운스윙 하듯 사선으로 내려오면 안된다. 레벨스윙을 하듯 손등이 바닥을 향한 상태에서 직격해야 타구가 멀리 뻗는다. 깍아친다는 의미를 내포한 다운스윙은 잘못된 타격폼이다.

김성래는 선수시절 멀리치는 방법들을 모두 잘 소화했다. 그런데 약점이 있었다. 타격은 좋았는데 수비가 그에 비해 조금 떨어졌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투지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박정태처럼 독한 면이 없었다. 연세대 졸업 후 삼성에 입단하지 않고 실업팀인 제일은행에 들어가려 했는데 당시 그 이유를 물었더니 자신이 없다고 했다. 내야에 배대웅, 천보성 등 쟁쟁한 선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종이 아닌게 약점이었다. 조금만 더 독하게 야구했다면 2루수 홈런왕 시대를 활짝 열었을 것이다. 

타고난 장사 이만수 30홈런 못때린 이유


현역시절 이만수는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장타를 때려내던 '홈런왕'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 처럼 스윙이 시작된 이후에도 중심이 오른발에 남아있어 배트 헤드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정확성이 떨어졌다.

이만수(55.SK감독)는 반발심이 강한 선수였다. 좋은 뜻에서 반발심이 있는 선수는 대성할 가능성이 높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이를 악 물고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일화가 있다. 삼성 감독시절(87~89년) 결정적인 찬스에서 이만수가 병살을 쳤다. 그래서 "4번타자가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날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정동진 당시 코치가 "(이)만수가 밤새도록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윙연습을 했다"고 보고했다. 자존심이 상해 죽기 살기로 훈련한 것이다. 이만수에게는 모른척했다. 밤을 샜으니 컨디션이 안좋겠다 싶어 (밤새도록 스윙연습 한 것은 못들은척 하고) 경기전 "불펜에 가서 볼이나 받고 있으라"며 덕아웃에서 내쫓았다. 4-2로 앞선 7회말 2사 만루 찬스가 됐는데 이만수가 안보여 찾았더니 그때까지 불펜에서 공을 받고 있더라. 결국 밤새도록 스윙연습을 한 이만수는 만루 찬스에서 좌중월 3타점 2루타를 때려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그만큼 우직하고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다.

개성 강하고 자존심 센 이만수는 이런 면에서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홈런타자로 군림했다. 최초의 타격 트리플크라운(타율 홈런 타점 1위)을 달성한 것도 이만수의 끈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는 타고난 장사였다. 175㎝에 불과한 키로도 장타를 뿜어낸 배경이다.

지도자는 선수의 성격을 파악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인 장훈은 "선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3년 삼성 타격코치로 부임했을 때 이만수를 최고의 타자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힘이 워낙 좋아 정확성만 높이면 충분히 트리플크라운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우직하면서도 고집센 그의 성격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타격은 정확성과 강한 임팩트, 타구궤적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정확한 폼이 중요한 이유다. 이만수는 스트라이드 후 임팩트 순간까지 중심이 뒤에 남아 있었다. 임팩트 순간에 상체가 포수쪽으로 젖혀져 땅볼이 많았다. 병살타가 많은 이유였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이만수에게 "3할을 칠 수 있는 폼으로 바꾸자"고 말했더니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폼을 수정했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연봉이 삭감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봉이 삭감되면 내 연봉으로 모두 보전해주겠다"고 말한 뒤 각서까지 쓰고 수정에 들어갔다.


타이밍이 늦어 오른손바닥을 땅바닥쪽으로 덮는 모습이 포착됐다. 중심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다. 타격은 공을 때린다는 느낌보다 배트에 얹어 밀어낸다는 기분으로 스윙을 해야 한다. 중심이동이 중요한 이유다.

정확성을 키우려면 리드핸들이라고 불리는 왼팔(우타자기준)이 80%가량 펴져야 한다. 그래야 일정한 스윙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까지 배트가 최단거리로 나갈 수 있다. 스윙궤적이 일정하면 공을 정확히 맞힐 확률도 높아진다. 배트가 임팩트 포인트에 도달하기 직전에는 몸의 중심은 왼발에 전부 실리고 배트는 벨트선과 수평을 이루는 것이 좋다. 공을 때린다기보다 민다는 느낌으로 타격을 해야 타구에 체중을 완전히 실을 수 있다. 이만수는 체중이동이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트 헤드가 떨어지고 타이밍이 늦는 경우가 많았다. 땅볼이 많았던 것도 타이밍이 늦어 오른손을 일찍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1983년 겨우내 하루에 배트 3자루가 부러질만큼 혹독한 훈련을 한 뒤 1984년 데뷔 후 최초로 3할 타율을 넘어 타율 0.340 23홈런 80타점(89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트리플크라운에 등극했다. 이 때부터 3할타자가 됐다. 그러나 30홈런 고지는 밟지 못했다. 26홈런(1990년)이 시즌 최다홈런이었다. 고집이 세 나쁜 습관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왼팔의 중요성과 완벽한 중심이동법을 터득했더라면 장종훈이 등장하기 이전에 40홈런 시대를 열고도 남았을 재목이었기 때문이다.

정확성의 대명사 장효조 타격의 비결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교타자로 꼽히는 장효조의 타격 준비동작은 군더더기가 없다. 오른 팔이 잘 펴져 있어 정교한 타격을 할 수 있는 자세다. 약간 위쪽을 향하고 있는 시선과 넓은 스탠스가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의 정교함에 흠집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타격의 기본은 무엇일까. 타격은 득점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점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 과거의 타격 이론은 스윙을 가르치는데 중점을 뒀다. 그러나 실전에서 점수를 얻기 위해서는 공을 때리는데 집중해야 하고 훈련도 공을 때리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러자면 스윙 자체가 아니라 공을 때리기 위해서 팔과 다리를 비롯한 자신의 몸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를 얘기해야 한다. 스윙을 고치려들 것이 아니라 공을 때릴 때 팔과 다리의 모양, 쓰임새만 바로 잡으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다.

필자가 타격이론을 정립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던 사건이 있다. 1985년 일본의 야구 전문지 슈칸베이스볼이 창간 30주년을 기념한 특별 화보를 발행했다. 화보에는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역대 명투수와 타자 30명의 피칭과 타격 장면을 32컷의 연속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그 가운데 오사다하루, 나가시마, 장훈 등 개성넘치는 강타자의 사진도 포함됐는데 놀랍게도 7번째부터 16번째 사진까지는 타격 자세가 거의 일치했다. 장훈은 배트를 눕힌 자세에서 타격에 시동을 걸었고 오사다하루는 배트를 바짝 세우고 한 발을 드는 외다리 타법을 구사했지만 공을 맞히는 임팩트존에서는 똑같은 자세로 공을 때리고 타구에 힘을 싣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국 좋은 타자들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다르지 않았고, 그 공통점을 연구하면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타격의 기본은 공을 정확하고 힘있게 때려서 멀리 타구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타격은 정확성과 강한 임팩트, 비거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한다. 정확하면 3할타자가 될 것이고, 강하게 때릴 수 있으면 홈런타자가 된다. 그 중 첫번째 화두가 정확성이다.

 
장효조가 왼쪽 팔꿈치를 옆구리 쪽으로 내려붙이면서 타격에 시동을 걸고 있다. 45도 각도로 누워있던 배트도 거의 뒤쪽으로 평평하게 눕기 시작한다

한때 국내에서도 찍어치기, 즉 다운스윙을 집중적으로 가르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는 잘못 배운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에서도 한 때 메이저리그 따라잡기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다. 당시 요미우리가 LA 다저스의 캠프에서 스프링캠프를 차렸는데 양 팀 감독들이 야구론을 교환하는 기회가 있었다. 당시 다저스의 야구이론과 시스템을 집대성한 '다저웨이'라는 책이 화두가 됐고 메이저리그식 타격의 요체를 "슬로우, 슬로우, 다운"이라고 말한 것을 통역이 잘못 전달해 일본에서 다운스윙이 급속도로 전파됐다. 그것이 60년대 후반부터 한국으로 유입됐는데 최근까지도 찍어치기를 강조하는 타격 이론가들이 적지 않다. 비거리를 늘리기 위해서는 다운스윙으로 공을 내리찍듯 때려서 역회전을 만들어내야한다는 물리의 법칙도 동원됐다. 그렇다면 느린 커브를 올려쳐서 홈런을 때려내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결국 찍어치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공과 배트가 정면으로 만나게 해야 좋은 타격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운스윙을 하다보니 뒷다리에 체중이 많이 남아있게 되는 단점도 있다. 앞다리 쪽으로 체중을 완전히 실어줘야 파워가 살아나는 법이다.

 
임팩트 직전까지도 장효조의 오른팔은 쭉 펴져 있다. 왼팔은 거의 옆구리에 고정시킨 것 처럼 붙어서 몸통의 회전력을 이용할 준비까지 완벽하다.

정확성을 거론하기 위해 이 선수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장효조다. 역대 한국 타자들 가운데 가장 정교한 타격을 했던 선수가 장효조다. 장효조는 빼어난 선구안을 갖고 있었지만 그에 앞서 정확하게 공을 때릴 수 있는 팔동작을 갖췄다. 그것이 장효조가 통산 0.331의 경이적인 타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장효조의 타격은 하체보다는 상체에 집중해야 한다. 사실 장효조의 스탠스는 자신의 체구에 비해 지나치게 넓은 편이었다. 그러나 상체의 준비 동작은 거의 완벽했다. 

사진을 보면 타격을 위해 들어올린 장효조의 오른팔이 거의 일직선에 가깝게 쭉 뻗어 있다. 좌타자인 장효조는 오른팔이지만 우타자들은 왼팔을 가능한한 곧게 뻗어야 정확성을 얻을 수 있다. 골프의 백스윙과 같은 원리다. 팔을 뻗지 못하면 스윙 궤적이 흔들린다. 하물며 서있는 공을 때릴 때도 정확성을 얻기 위해 팔을 뻗는데 팔을 고정시키지 않고 어떻게 움직이는 공을 때릴 수 있겠는가. 장효조 뿐만 아니라 김현수, 양준혁 등 정확도가 높은 타자들의 타격 자세는 한결 같다.

 
타격을 마친 장효조의 오른쪽 다리가 90도 이상 굽혀져 있다. 체중 이동이 잘됐다는 의미다.

이 자세에서 배트는 45도 정도의 각도를 유지해야 한다. 준비단계에서 배트를 앞으로 눕히거나 뒤쪽으로 눕히거나 꽂꽂하게 세우는 것은 관계가 없다. 체중이동이 시작되기 직전에는 배트가 45도를 유지해야 일정한 스윙을 할 수 있고 공과 배트가 정타로 맞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장효조의 상체는 팔과 배트의 이상적인 각도를 잘 보여준다. 배트가 나오는 지점에서부터는 왼팔이 몸에 거의 붙어있다. 그래야 정확성을 유지하면서 몸통의 회전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

상체 동작 가운데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시선이다. 시선이 약간 위쪽을 향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선을 위로 둘 경우 몸과 공의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뒤쪽 어깨가 내려가면서 배트가 몸에서 겉돌게 된다. 바깥쪽 공은 손대기가 어려워지고 몸쪽 빠른 공에도 대응하기가 어렵다. 장효조도 그런 이유 때문에 몸쪽 빠른 공에 약점을 보였다. 조금만 시선을 내려봤으면 더 완벽한 타자가 됐을 것이다.

 
장효조가 마지막으로 타구에 힘을 실은 뒤 1루를 향해 스타트를 끊는 순간이다.

반면 장효조의 하체는 장타를 생산하기 어려운 동작을 취하고 있다. 앞서 지적했지만 스탠스가 넓었다. 일반적으로 스트라이드를 내딛는 발이 축족에서 34인치 이상 벌어지면 체중이동을 완벽하게 할 수 없다. 스트라이드가 넓은 탓에 타격 준비를 취하면서도 체중이 앞다리에 남아있다. 체중을 뒷다리로 실었다가 앞다리로 옮기면서 타구에 힘을 실어야 하는데 체중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니 홈런이 적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장효조의 스탠스를 교정하지 않았던 것은 체중이동을 최소화하는 편이 정확도를 높이는데 유리했기 때문이다. 장효조의 경우 파워가 더 실릴 경우 외야 플라이로 그치는 타구만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홈런수는 다소 늘어나더라도 안타는 눈에 띄게 줄어들었을 것이다. 타자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살려내는 것도 지도자의 중요한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