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타고난 장사 이만수 30홈런 못때린 이유


현역시절 이만수는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장타를 때려내던 '홈런왕'이었다. 하지만 사진에서 처럼 스윙이 시작된 이후에도 중심이 오른발에 남아있어 배트 헤드가 떨어지는 단점이 있어 정확성이 떨어졌다.

이만수(55.SK감독)는 반발심이 강한 선수였다. 좋은 뜻에서 반발심이 있는 선수는 대성할 가능성이 높다.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이를 악 물고 명예를 회복하겠다는 오기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일화가 있다. 삼성 감독시절(87~89년) 결정적인 찬스에서 이만수가 병살을 쳤다. 그래서 "4번타자가 이것밖에 안되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날밤 같은 아파트에 살던 정동진 당시 코치가 "(이)만수가 밤새도록 아파트 주차장에서 스윙연습을 했다"고 보고했다. 자존심이 상해 죽기 살기로 훈련한 것이다. 이만수에게는 모른척했다. 밤을 샜으니 컨디션이 안좋겠다 싶어 (밤새도록 스윙연습 한 것은 못들은척 하고) 경기전 "불펜에 가서 볼이나 받고 있으라"며 덕아웃에서 내쫓았다. 4-2로 앞선 7회말 2사 만루 찬스가 됐는데 이만수가 안보여 찾았더니 그때까지 불펜에서 공을 받고 있더라. 결국 밤새도록 스윙연습을 한 이만수는 만루 찬스에서 좌중월 3타점 2루타를 때려 승리에 일등공신이 됐다. 그만큼 우직하고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다.

개성 강하고 자존심 센 이만수는 이런 면에서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홈런타자로 군림했다. 최초의 타격 트리플크라운(타율 홈런 타점 1위)을 달성한 것도 이만수의 끈기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는 타고난 장사였다. 175㎝에 불과한 키로도 장타를 뿜어낸 배경이다.

지도자는 선수의 성격을 파악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최다안타 기록 보유자인 장훈은 "선수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은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1983년 삼성 타격코치로 부임했을 때 이만수를 최고의 타자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타고난 힘이 워낙 좋아 정확성만 높이면 충분히 트리플크라운이 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우직하면서도 고집센 그의 성격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타격은 정확성과 강한 임팩트, 타구궤적의 3박자를 갖춰야 한다. 정확한 폼이 중요한 이유다. 이만수는 스트라이드 후 임팩트 순간까지 중심이 뒤에 남아 있었다. 임팩트 순간에 상체가 포수쪽으로 젖혀져 땅볼이 많았다. 병살타가 많은 이유였다. 그래서 제안을 했다. 이만수에게 "3할을 칠 수 있는 폼으로 바꾸자"고 말했더니 "싫다"는 답이 돌아왔다. 폼을 수정했다가 성적이 떨어지면 연봉이 삭감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봉이 삭감되면 내 연봉으로 모두 보전해주겠다"고 말한 뒤 각서까지 쓰고 수정에 들어갔다.


타이밍이 늦어 오른손바닥을 땅바닥쪽으로 덮는 모습이 포착됐다. 중심이동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나타난 현상이다. 타격은 공을 때린다는 느낌보다 배트에 얹어 밀어낸다는 기분으로 스윙을 해야 한다. 중심이동이 중요한 이유다.

정확성을 키우려면 리드핸들이라고 불리는 왼팔(우타자기준)이 80%가량 펴져야 한다. 그래야 일정한 스윙궤적을 그리며 날아오는 공까지 배트가 최단거리로 나갈 수 있다. 스윙궤적이 일정하면 공을 정확히 맞힐 확률도 높아진다. 배트가 임팩트 포인트에 도달하기 직전에는 몸의 중심은 왼발에 전부 실리고 배트는 벨트선과 수평을 이루는 것이 좋다. 공을 때린다기보다 민다는 느낌으로 타격을 해야 타구에 체중을 완전히 실을 수 있다. 이만수는 체중이동이 완벽히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배트 헤드가 떨어지고 타이밍이 늦는 경우가 많았다. 땅볼이 많았던 것도 타이밍이 늦어 오른손을 일찍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1983년 겨우내 하루에 배트 3자루가 부러질만큼 혹독한 훈련을 한 뒤 1984년 데뷔 후 최초로 3할 타율을 넘어 타율 0.340 23홈런 80타점(89경기 출장)을 기록하며 트리플크라운에 등극했다. 이 때부터 3할타자가 됐다. 그러나 30홈런 고지는 밟지 못했다. 26홈런(1990년)이 시즌 최다홈런이었다. 고집이 세 나쁜 습관을 완전히 고치지는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쉽다. 왼팔의 중요성과 완벽한 중심이동법을 터득했더라면 장종훈이 등장하기 이전에 40홈런 시대를 열고도 남았을 재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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