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5일 금요일

기술도 정신력도 겸비한 악바리 박정태

박정태(44.WBC대표팀 타격코치)는 '흔들타법'이라는 다소 독특한 폼을 가진 타자였다. 몸을 좌우로 흐느적거리며 방망이에 왼손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타격폼으로 눈길을 끌었다. 힘을 빼고 치기 위해 왼손을 뗀 스탠스(타격준비 자세)를 취했다고 했다. 하지만 박정태를 처음 본 게 1991년 롯데에 처음 입단했을 때였는데, 프로 데뷔 초창기 박정태의 폼은 그렇지 않았다. 여느 타자와 다를 게 없는 정상적 스탠스였다. 하지만 그 때도 충분히 자질있는 선수였다. 내가 태평양 돌핀스 감독이었을 때였는데 롯데 신인이라고 해서 눈여겨봤다. 지켜보니 작은 아이가 방망이도 잘 치고, 2루 수비도 곧잘 했다. 처음 보고 '롯데에 물건이 들어왔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롯데 박정태의 1991년 프로 데뷔 초기 스탠스. 여느 타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내 기억으로는 박정태가 정상적인 스탠스를 버린 게 다리를 크게 다친 뒤로 기억한다. 부상 회복 후 재기를 할 때 '흔들타법'으로 타석에 섰던 것 같다. 사실 흔들타법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스탠스다. 엉거주춤하며 흔들거리는 모습도 그렇지만, 허리도 지나치게 많이 굽혔다. 한일 슈퍼게임 당시엔 박정태의 스탠스를 보며 일본 선수들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물론 박정태가 잘 치자 그 웃음도 사라졌다. 혹자는 그런 타법으로 어떻게 한 시즌 최다 2루타(1992년 43개)를 쳤고, 2루수 부문 최다인 골든글러브를 5회나 수상했는지 의아해하기도 한다.

박정태의 독특한 스탠스는 무조건 잘못됐다고 할 수 없다. 스탠스는 타자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잘 치는 타자들의 스트라이드(실제 타격에 들어갔을 때 자세)는 거의 비슷하다. 사진 자료를 봐도 그렇다. 특이한 스탠스를 취했던 박정태도 스트라이드에 들어가면 기본기에 충실했다. 양 팔이 히팅포인트에서 일직선으로 쭉 펴지고, 폴로스루가 잘 이뤄졌다. 하체의 중심이동도 잘 됐다. 결국 총을 쏘기 전 자세는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방아쇠를 당길 때의 자세가 훌륭하면 과녁 가운데를 관통시킬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1999년 활약 시절 박정태의 스탠스. 흔들타법이라 불리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공을 치기 위해 마운드 쪽을 노려보고 있다.

무엇보다 박정태는 기술뿐 아니라 정신력에 있어서도 레전드급이다. 타격 달인이 되려면 기술뿐 아니라 정신력도 중요하다. 박정태는 두 가지를 모두 겸비한 타자였다. 공을 잘 치는데다 꼭 이기겠다는 투지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정신적 지주로 통했다. 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상대팀 감독인 나에게도 보였다. 삼진을 당하고 덕아웃으로 들어갔는데 헬멧을 쓴 채로 벽에 머리를 박으며 분을 참지 못하더라. 그런 모습들은 팀 동료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크다. 정신적으로 무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감독 입장에서도 그런 선수가 있으면 편할 수밖에 없다. 1992년 롯데가 정규시즌 3위로 올라가 삼성을 꺾고 우승을 한 것도 정신적인 게 크다.

내가 처음 박정태를 봤을 때만 해도 그 정도로 '악바리'인줄 몰랐다. 쭉 지켜보니 오로지 야구에 살고, 야구에 죽는 선수였던 것 같다. '야생야사(野生野死)'라고들 하는데 그 말에 딱 맞는 선수다. 아직까지도 박정태 정도의 투지를 갖고 경기장에 나서는 선수를 보지 못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