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철은 반사신경이 특히 뛰어난 타자다. 투수의 공을 최대한 붙여서 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김용철(전 경찰청 야구단 감독.56)을 처음 만난 건 1981년 11월로 기억한다. 프로야구 출범을 준비하던 때 롯데 초대 사령탑으로 예정된 나는 연봉협상까지 도맡아 했는데 첫 연봉협상자리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계약금 2200만원 연봉 1000만원 등 당시로선 특급대우에 계약했다. 특급대우를 해준데는 이유가 있었다.
김용철은 1976년 부산상고를 졸업하고 한일은행에 입단하게 된다. 당시 한일은행 감독이었던 김응룡(현재 한화 감독)은 갓 입단한 신인을 4번 타자로 기용하는 파격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보니 김응룡 감독의 신인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주전 3루수이자 4번 타자였던 강병철은 김용철에게 자리를 내주고 1루수와 5번 타순으로 옮기게 된다. 그 당시 김용철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 지 알 수있는 대목이다.
김용철은 타격 소질이 뛰어난 타자였다. 특히 반사신경이 뛰어나서 이상적 히팅 포인트에 맞히는 재능은 따라올 사람이 없었다. 투수의 던진 공에 반응하는 속도가 0.12초 이내면 국가대표팀 타자가 될 자격이 있다. 구속 145km의 공을 미리 예측해서 치면 때려내기가 힘들다. 마운드에서 날아오는 공을 홈플레이트 7m이내(잔디 경계선)까지 지켜보고 친다면 특급타자로 분류된다. 일반 타자들은 10m정도에서 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한다.
김용철은 공을 최대한 지켜본 뒤 스윙을 했다. 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고 치니 타자에게 유리할 수 밖에. 몸에 붙여서 친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히팅 포인트가 좋다는 것은 타자의 반사신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반사신경이 뛰어날수록 좋은 히팅포인트를 가지게 된다. 타자가 스트라이드한 앞 발 엄지 발가락 근처가 히팅 포인트가 된다. 바로 그곳이 임팩트 존이다. 타격의 3대 요소인 정확하고 강하게 멀리 치는 게 가능한 지점인 것이다.
프로야구 초창기 타자들은 히팅포인트에 대해 잘 몰랐다. 대충 강하게 휘두르는 타자들이 많았다. 김용철은 타격이론을 제대로 배우지도 않았지만 투수의 공을 기다리는 자세가 좋았다. 바로 좋은 히팅포인트를 가졌다는 것이다.

김용철은 완벽한 체중이동을 통해 히팅포인트에서 힘을 모아 배팅할 수 있었다.
또 하나 지적하고 싶은 것은 레벨 스윙이다. 히팅 포인트에서 타자는 어깨 손목 배트가 일직선이 되어야 한다. 팔은 자연스럽게 일직선으로 뻗어줘야 한다. 김용철의 타격사진을 살펴보면 왼 무릎이 자연스럽게 굽혀진 채 팔을 쭉 뻗어주는 걸 볼 수 있다. 또 완벽한 체중이동을 통해 임팩트시 힘을 모아 치는 모습도 보인다. 김용철이 장타를 많이 생산해낸 원동력이다.
김용철은 뛰어난 타격 재능에 비해 이만수 김성한 등에 비해 화려한 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재능에 비해 노력이 조금 부족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선수가 롱런하기 위해선 자신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토대로한 합리적 연습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데 김용철은 그 점에서 아쉽다.
프로야구 초창기 선수들은 자신들에 대한 관리가 형편 없었다. 자신의 몸이 자산이라는 프로의식도 부족했다. 구단과의 잦은 마찰과 갈등도 선수생활을 단축시킨 한 원인이 되었다. 쓸 데 없지만 '김용철이 지금 프로에서 활약했다면' 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본다. 아마도 김태균 이대호보다 더 뛰어난 성적을 내지 않았을까 한다. 그만큼 김용철의 재능이 아깝다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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